[SPECIAL INTERVIEW] 독일 시계 박물관 글라슈테 라인하르트 라이헬 관장

독일 시계 박물관 글라슈테의 라인하르트 라이헬 관장은 독일 워치메이킹의 전통적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 박물관의 최우선의 임무라고 말한다. 또한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창조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는 독일 시계 브랜드인 글라슈테 오리지널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다.


RDM 글라슈테 오롤로지의 기원은 무엇인가?
Reinhard Reichel(이하 RR)
가난한 탄광 도시였던 글라슈테에 독립된 사업을, 그것도 시계 산업을 정착시키겠다는 비전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산업화에 가속도가 붙고, 철도가 전 유럽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면서 실용적이고 믿을 수 있는 시계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스위스나 프랑스의 시계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독일 현지에서 제작하는 정확한 회중시계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작센 지방 정부는 글라슈테에 새로운 산업을 도입하고자 했고, 총 15개의 도시 중에서 글라슈테가 그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RDM 19세기 시계 연합과 대학생 연합은 어떤 방식으로 작센 지방의 시계 발전에 기여했는가?
RR
당시 우라니아(Urania) 시계 연합과 삭소니아(Saxonia) 대학생 연합이 글라슈테에 있었다. 이 두 연합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경험을 나누고 노력을 모아 혁신을 이끌어가며 완벽한 기술과 네트워크를 공유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협력 정신과 공동체 정신이 커나갔다. 글라슈테 시계 학교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끌까지 글라슈테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이 연합회의 인맥에 속해있다. 연합회간의 교류, 정보와 인맥의 공유는 글라슈테 시계 산업의 발전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RDM 독일 시계 학교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동문과 재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현재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RR
옛날이나 지금이나 글라슈테 시계 학교는 교육 과정에서 이론과 실습의 조화를 중시해왔다. 글라슈테 근방은 물론, 독일 전역, 더 나아가 전 세계의 회사들이 우리 졸업생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글라슈테는 단순히 빼어나게 아름답고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도시에 그치지 않는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재능 있는 시계 인재 양성소로도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 뛰어난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글라슈테의 이름이 전 세계 각지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RDM ‘글라슈테 스타일’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RR
글라슈테 스타일은 전통적인 가치와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창의성의 완벽한 조합이다. 글라슈테 시계는 언제나 시간을 초월한 시계로 남아 있을 것이다.

RDM 글라슈테의 전문 분야는 바로 크로노미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RR
19세기 말에 글라슈테는 독일의 크로노미터 제작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전 세계의 시장을 지배했던 것은 영국산 크로노미터였다. 그런 영국 시계 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 정부는 자체적으로 크로노미터를 제작하기로 하고, 그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에 크로노미터 생산지를 구축하겠다는 소망과 필요성은 독일이 해군을 조직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커졌다. 그리고 크로노미터의 중심지로 글라슈테가 선정되었다. 최상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견고한 크로노미터 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유한 전문 기술을 갖추는 것이 필수 조건인데, 이미 글라슈테는 그 같은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RDM 글라슈테만의 고유하거나 특별한 컴프리케이션이 있다면?
RR
훌륭한 마스터 워치메이커이자 독일 시계 학교의 교사였던 알프레트 헬비히(Alfred Helwig)가 1920년에 제작한 카루셀(플라잉) 투르비용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파노라마 데이트 같은 상징적인 컴플리케이션도 있다. 파노라마 데이트란 데이트 창의 십의 자릿수 디스크와 일의 자릿수 디스크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는 시계를 말한다. 글라슈테 오리지널이 개발한 또 하나의 컴플리케이션은 정확한 시간 세팅이 가능한 더블 스완 넥이다.

RDM 글라슈테 시계는 복제의 대상인가? 실제로 복제가 되고 있다면, 누가 하고 있는가?
RR
글라슈테 시계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감안하면, 일찍이 복제품과 모방품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시계 박물관에는 1920년경에 만들어진 스위스 회중시계가 있는데, 이 시계는 글라슈테 특유의 스리 쿼터 플레이트를 사용한 것으로서 ‘글라슈테 체제에 따라 제작한’ 회중시계다.

RDM 독일 시계 박물관 글라슈테와 글라슈테 오리지널 매뉴팩처의 관계는 어떠한가?
RR
글라슈테 매뉴팩처는 독일 시계 박물관 글라슈테의 창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박물관의 이름은 스와치 그룹의 창립자인 니콜라 G. 하이에크 회장이 지은 것이다. 그는 현 글라슈테 매뉴팩처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글라슈테의 한복판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에는 시계 학교와 글라슈테 오리지널 시계 복원 아틀리에가 자리 잡고 있다. 시계 박물관을 찾는 모든 관람객은 이곳에서 관람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박물관이 글라슈테 오리지널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RDM 시계의 군사 과학적 차원 덕분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시계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보는가?
RR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 민주공화국(동독) 기간 동안 과학적인 측면이 독일 시계의 성장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글라슈테의 정밀 회중시계가 중국이나 그린란드 같은 먼 나라까지 수출되었고, 이 시계들은 관측소와 연구 단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관측 시계들과 극지방 탐사 및 연구용 선박에 쓰이는 항해용 크로노미터 시계(처음에는 기계식이었고 뒤에는 쿼츠 시계를 썼다) 등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폴라스턴(Polastern) 탐사선의 경우에는 VEB 글라슈테 시계회사(VEB Glashütter Uhrenbetriebe)의 협동조합에서 만든 항해용 크로노미터를 사용했다.

RDM 앞으로 박물관이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보는가?
RR
박물관은 언제나 시계애호가들과 아마추어 역사가들을 받아들이는 만남의 장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 어린이들 등의 흥미를 끌고자 하며, 그들에게 크로노미터 기술에 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단순히 전문가들과 견문이 높은 관람객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던하고 상호작용이 높은 전시 공간으로서, 우리는 시대에 맞춰 발전해나가야 하고, 최신 전시회 동향에도 발맞추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도 글라슈테의 이름으로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중국과 스위스에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매우 큰 호응을 얻었으므로 계속해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RDM 향후 특별 전시회와 관련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RR
글레슈테의 다양한 시계 회사들의 창립 기념 연도에 맞춰 특별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이며, 우리 도시의 다양한 유명 인사들을 기리는 행사도 진행할 것이다. 그 외에 외부 전시자도 초청해 시계 테마와 관련한 역사를 기리는 다양한 전시회도 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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