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ÇOIS-PAUL JOURNE : GOOD VIBRATION

독창적인 접근법의 선두주자인 워치메이커 프랑수아 폴 주른은 시계 디자인의 선두에 서서 늘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3년에 주른은 18세기의 선구자적 워치메이커인 앙티드 장비에의 공명 시계에 관한 기술을 연구해 이를 손목시계를 접목시켰다. 젊은 시절부터 시계에 관한 열정을 불태워온 그의 모험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3년 F.P.주른이 제작한 공명 무브먼트 시제품.

공명 시계(Resonance Clock)의 원리를 자그마한 사이즈의 시계에 접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맥락부터 알아야 한다.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프랑수아 폴 주른(F. P. Journe)은 젊은 시절에 시계 공방을 운영하는 자신의 삼촌 곁에서 시계공으로서의 기술을 완벽히 전수하기 위해 파리를 찾았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며 스스로를 뛰어넘으려는 갈망이 큰 편이었다.

파리의 왼쪽 기슭에 위치한 삼촌의 공방에서 주른은 시계 제작에 관한 많은 기술과 지식을 배우면서 시계라는 기계 장치로 시간의 완벽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인간의 천재적 기술력에 깊이 매료되었다. 실력을 쌓은 주른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나 앙티드 장비에(Antide Janvier) 같은 18세기 위대한 시계제작자들의 시계 복원에 직접 참여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시계 수리 공방에서 일하면서 그는 점차 자신만의 시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시계 장인인 조지 대니얼스(George Daniels)의 『브레게의 기술(The Art of Breguet)』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는 기계식 시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굳혔다. 현대 시계의 아버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와 그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인 투르비용은 그에게 특히 더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이었다. 조지 대니얼스의 저서들은 주른뿐만 아니라 많은 워치메이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당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일찍 발견한 천재성

↑프랑수아 폴 주른

주른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까지 수년이 걸리지 않았다. 과거나 오늘날 천재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면 아주 일찍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8세기의 저명한 워치메이커인 앙티드 장비에는 15세의 나이에 혼자서 나무를 이용해 움직이는 천체시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현대 장인들이 보기에는 조잡해 보이는 수준이겠지만 말이다.

목공술에 뛰어났던 워치메이커는 장비에뿐만이 아니다. 18세기 초반에 최초로 항해용 시계인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존 해리슨(John Harrison)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가구 제작 교육을 받았었다. 그는 목재의 종류에 대한 박식한 지식 덕분에 자연적으로 얇은 기름막을 형성하고 있는 인도자단(Padouk)의 목재를 사용해 시계의 회전축을 만들었다. 밀도가 좀 더 높은 나이테 사이의 목재를 부분적으로 골라서 목제 톱니바퀴도 만들었다.

과거의 예술가와 천재들만이 일찍부터 재능을 빛낸 것은 아니었다. 현대의 워치메이커인 프랑수아 폴 주른도 20세의 나이에 투르비용 시계를 만들었고, 22세에는 천문시계를 만들어서 입체적 기계 장치를 고안해내는 데 재주가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끝없이 자신을 초월하다

↑앙티드 장비에가 1780년경 제작한 공명 레귤레이터 클락.

더 멀리까지 가보려는 그의 마음은 앙티드 장비에의 유산을 발견하면서 더욱 커졌고, 결국 그는 공명 현상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앙티드 장비에가 남긴 3점의 공명 추시계 중 하나는 F. P. 주른의 아틀리에에 있다). 장비에는 당시에 2개의 커다란 밸런스가 발생시키는 공명 현상을 이용해 무브먼트의 정확성을 개선한 시계를 발명해냈다. 젊은 나이의 주른은 당연히 이 현상에 큰 관심을 가졌고, 결국에는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부터 장비에의 발명품을 손목시계에 접목하기 위해 소형화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 장치의 운동학적 연결 고리의 비율을 계산해냈다. 1983년에는 먼저 회중시계의 형태로 첫 시제품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그가 진행해온 연구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2001년에 제작한 직경 38mm의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이 시계는 궁극에 가까운 정확성을 자랑하는 크로노미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수한 고안과 개발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2개의 밸런스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진동을 주고받는 형태인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두 밸런스가 조화를 이루며 회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두 밸런스가 무브먼트에 더 큰 관성을 주면서 서로 돕는 역할을 한다. 주른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려면 두 밸런스 사이의 진동수 오차가 하루에 5초를 넘어서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밸런스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 작업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니바록스(Nivarox)에서 기술적으로 동일한 밸런스와 용수철을 공급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20주년을 기다리다

↑뉴욕의 전경을 다이얼에 새긴 2002년의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최초의 ‘크로노미터 레조낭스®’는 2000년에 프랑수아 폴 주른의 제네바 공장에서 탄생했다. 비범하기 그지없고 큰 세심함을 필요로 하는 이 장치는 당시의 모든 기준을 뛰어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제네바의 중심부에 제대로 자리 잡은 완벽주의자 프랑수아 폴 주른은 도금한 황동이 아닌 골드 소재로 무브먼트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04년에 최초로 크로노미터 레조낭스®에 골드로 만든 칼리버를 사용했다. 이는 나중에 점차 주른의 다른 크로노미터에도 모두 적용되었다.

↑그레이 다이얼을 매치한 2005년 버전.

↑플래티넘 케이스에 골드 다이얼을 매치한 2004년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그러나 프랑수아 폴 주른은 현재의 결과에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2010년에는 크로노미터 레조낭스®의 성공적인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버전을 선보일 결심을 했다. 이렇게 탄생한 새 버전은 9시 방향에 24시간 디스플레이를 갖춘 형태로 훨씬 현대적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접근법 덕분에 낮과 밤 시간대를 더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시간대를 표시하는 시계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3시 방향에 실버 소재로 들어간 스몰 다이얼에는 잠재적으로 현지 시각을 표시할 세컨드 타임 존을 설정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기능성 덕분에 크로노미터 레조낭스®는 2010년에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컴플리케이션 상을 받았다.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론칭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선보인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2010년 크로노미터 레조낭스의 백 케이스.

의심할 여지 없이 F. P. 주른은 크로노미터 레조낭스®의 2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를 맞아 새로운 크로노미터 레조낭스® 모델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새롭게 출시될 모델도 35년 전에 주른이 처음 선보였던 프로토타입 무브먼트의 업적을 바탕으로 개발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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