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SS GUARDS-FRONTIERS WATCHES AFTER FIRST WORLD WAR: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스위스 국경 수비대를 위한 시계

1914년 스위스는 참전국들에 둘러싸인 채 중립국이라는 섬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단순한 관조자로 남아 있던 것이 아니라 국경 수비대를 세우고 여러 참전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스스로 국가를 지키고자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경 수비대에게 제공된 시계들이 증명하고 있다.

↑제니스는 국경 수비대를 위한 시계를 가장 많이 제작했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이 폭탄 소리로 요란할 때 스위스는 중립을 유지하며 한창 전쟁 중인 4개 국가 사이에 끼여 있었다. 스위스와 국경을 접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스위스는 중립을 지키며 섬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당시 스위스 국경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참전국들이라면 스위스의 중립 선언을 무시하고 적의 배후를 치기 위해 스위스 국경을 넘어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스위스는 이 시기에 단순한 관조자로 남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여러 국가에 대한 정보를 면밀히 수집했다. 한편으로 전쟁 중에는 민간인들이 언제든지 스위스 영토 안으로 피신할 수 있었는데, 이 같은 문제가 스위스 경제에 위기를 불러와 자국민들이 피난민들에게 보복을 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스위스는 곳곳에 산재한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수비대를 세워 수출입은 물론 주민들의 생명과 물자 보급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했다.

국경 수비대와 함께 전반적인 감시 활동을 위한 소총수 부대도 조직되었다. 장교들은 매우 힘든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도 엄격하고 효율적인 규율을 준수했다. 군인들은 이미 완벽하게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부대에 투입되었고, 군대 안에서는 주류 소비가 금지되었다. 때로는 민간인의 주택이나 텐트 등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잠을 자며 차디찬 날씨를 견뎌내야 했지만 부대에서는 단 한 번의 반항이나 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케이스에 새겨진 그림은 평화와 동시에 단호함을 상징한다. 대포 옆의 에델바이스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영광의 시계는 일종의 보상이자 감사의 표시

전쟁이 종결되고 나서 몇몇 스위스 마을에서는 이 국경 수비대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했다. 용감하고 애국적인 행보를 보인 이들에게 보상해주고 싶은 차원이었다. 시계 산업의 요람인 스위스에서 일반적으로 제공한 포상은 시계였고, 이런 아름다운 시계를 보유하게 된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특히 스위스 연방 사격 대회는 이런 시계를 선사할 좋은 기회였다.

스위스 보(Vaud) 주의 북부에 위치한 데모레(Démoret) 마을에서는 마을을 지켰던 사격수들에게 특별히 제작된 회중시계로 감사를 표했다. 영예로움의 상징이었던 이 회중시계들은 성능이 매우 뛰어난 고급 시계였으며, 800% 은으로 제작한 케이스를 씌웠다. 또한 이런 상을 받은 사격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회중시계는 매우 진귀한 가치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개별 시계에는 무브먼트 커버에 공을 세운 사격수의 이름과 그가 소속된 부대의 번호가 새겨졌다. 백 케이스에는 국경 수비대나 소총을 들고 스위스 십자가가 그려진 국경 표지석에 배낭을 세워둔 사격수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 장식이 들어갔는데, 이것은 바로 메종 올리((Maison Holy)가 제작한 것이다. 

↑국경 수비대를 위한 제니스의 회중시계.

올리 형제의 세공

스위스 국경 수비대의 시계에 들어갈 세공을 담당한 메종 올리는 메종 위그냉(Maison Huguenin)과 함께 시계 케이스 제조사로 명성을 얻던 곳이었다. 그중 메종 올리는 1893년 스위스 생티미에(Saint-Imier)에 설립된 ‘생티미에의 올리 형제’가 그 시작이었다. 프랑수아 올리(François Holy)와 쥘 올리(Jules Holy) 형제가 세운 이 회사는 시계 케이스의 제작과 장식은 물론, 각종 메달과 압형기 제작도 맡았다. 메종 올리는 1914년 베른에서 열린 스위스 국립박람회에서 시계 케이스 제작과 압형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올리 형제의 브랜드 ‘H’는 1919년에 정식으로 등록되었다. 

메종 올리는 제니스보다는 오메가에 더 많은 케이스를 제공했는데, 제니스가 메종 위그냉과 더 자주 작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니스를 위해 올리가 제작한 시계가 현재까지 더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스위스의 국경 수비대를 위한 시계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스위스 연방 사격 대회용 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경 수비대의 시계에 새겨진 사격수의 배경은 주로 호수와 산이었다. 또한 그 주변에는 힘을 상징하는 대포, 평화를 상징하는 에델바이스, 마지막으로 스위스 깃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시계의 왼쪽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연도인 1914~1918이 새겨졌고, 장식의 맨 아래에는 ‘소집(Mobilisation)’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런 회중시계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시계 하나하나가 스위스 역사의 한 장을 증언한다고 할 만큼 역사적 의미가 깊다. 이 시계들이 곧 가족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가보인 동시에 할아버지나 영예로운 조상의 위업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을 세운 국경 수비대의 이름은 무브먼트 커버에 새겨졌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제니스는 이런 특별한 시계 제작 주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매뉴팩처 중 하나다. 따라서 이 시계들의 엄청난 가치가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무브먼트는 15주얼의 19리뉴 앵커 칼리버를 사용했고, 기욤(Guillaume) 밸런스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다이얼은 순백의 에나멜 다이얼에 아라비아 숫자로 시와 분을 각기 다른 컬러로 그려넣었다. 핸즈는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루이 15세 스타일로 장식했다. 

이 시계들은 종종 당시 프랑스가 자국의 군인들을 위해 제작한 시계들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스위스의 중립과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 소수 정예의 스위스 군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시계들은 확실히 구분된다. 데모레라는 작은 마을은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소중한 시계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것은 스위스 민족 전체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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