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OGRAPH: THE MEASURE OF INSTANT IN TIME

크로노그래프는 시계 애호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다.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브랜드의 대표 시계로 삼은 회사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한 크로노그래프가 브랜드의 화려한 명성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스피드마스터 없는 오메가, 엘 프리메로 없는 제니스, 내비타이머 없는 브라이틀링 그리고 데이토나 없는 롤렉스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매우 오래된 시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짧은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사실 매우 최근에서야 발명된 기능이다. 

↑영국의 워치메이커 조지 그레이엄.

1720년 영국의 워치메이커 조지 그레이엄(George Graham)이 짧은 시간 간격을 측정하는 도구를 발명했지만, 이는 현대적인 크로노그래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프랑스 파리의 니콜라스 뤼섹(Nicolas Rieussec)이 측정한 시간 간격을 다이얼 바늘이 표시한 잉크 점으로 나타내는 카운터를 발명한 것은 그로부터 100여 년이 더 흐른 1821년의 일이었다. 이 시간 기록 장치는 시간 기록자라는 의미로 ‘크로노그래프’라고 명명됐고,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쓰이고 있다. 

↑루이 무아네가 제작한 '콩퇴르 드 티에르스'.

니콜라스 뤼섹이 크로노그래프를 발명하기 전인 1816년에 루이 무아네(Louis Moinet)가 현대적인 크로노그래프와 가장 유사한 모양의 크로노그래프 포켓워치를 발명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이 때문에 크로노그래프의 최초 발명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크로노그래프’라고 명명한 니콜라스 뤼섹은 1822년 초 단위 크로노그래프라 불리는 시간 간격 측정 시계 혹은 카운터에 대한 특허를 받았는데, 이 특허가 바로 프랑스 국왕의 시계 장인이었던 뤼섹이 크로노그래프의 발명가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비록 뤼섹이 발명한 크로노그래프가 초보적 단계이지만 성능은 상당한 편이었다. 다만 뤼섹의 크로노그래프는 운반이 불편했다. 이후 1862년에 이르러서야 런던에서 활동하던 스위스 출신의 워치메이커 아돌프 니콜(Adolphe Nicole)이 측정을 정지한 후에 푸셔를 눌러 시곗바늘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기능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크로노그래프 제작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였고, 이때는 당연히 회중시계였다.

↑1915년 제작된 제니스 실버 크로노그래프.

아돌프 니콜의 발명품은 현대적인 크로노그래프에 상당히 근접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후 1933년에 크로노그래프의 두 번째 푸셔가 발명되었다. 브라이틀링이 발명한 이 두 번째 푸셔로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몇 번이고 멈췄던 시각 측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곧 현대적인 크로노그래프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손목시계 크로노그래프가 탄생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남아 있었다. 아돌프 니콜이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푸셔를 발명하고 나서 한 세기가 지난 1962년에 제니스가 오토매틱 와인딩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69년 전설적인 크로노그래프 엘 프리메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자동차와 함께 발전한 크로노그래프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발명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자동차가 등장한 시기와 겹친다. 당시에는 자동차 계기판에 아직 시계가 도입되지 않았고, 타키미터를 통해 평균속도를 계산할 수 있던 시기였다. 19세기 말부터 전후 시기까지 스포츠, 의학, 산업, 특히 합리화된 산업 생산 방식 그리고 군사적 용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무브먼트의 발명과 제작에 놀라운 가속도가 붙었다.

↑론진의 전설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19-73N을 장착한 사보네트 타입의 포켓 워치.

19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 사이에 설립된 대형 매뉴팩처들은 크로노그래프 시계 제작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론진은 1878년 최초의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L20H를 선보였다. 이어서 1897년에는 즉시 시간을 표기해주는 서브 다이얼을 장착한 19-73 무브먼트를 선보였는데, 직경 19리뉴의 이 무브먼트의 성능은 오늘날 기술력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후 론진은 라트라팡테 기능을 보유한 응용 버전이나 시간당 3만 6000회 진동하는 하이 프리퀀시(high frequency) 시계 등을 다양한 버전으로 선보였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19-73N을 장착한 론진의 포켓 워치.

그로부터 1년 후인 1898년 오메가는 19리뉴 크로(Chro) 무브먼트를 선보이며 크로노그래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직경 19리뉴의 이 무브먼트는 1930년대까지 많은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장착됐다. 이후 오메가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개발을 레마니아(Lémania)에 맡겼다. 1906년에 오메가가 선보인 양면(Double-face) 크로노그래프는 여러 가지 측정 단위를 다이얼에 표시할 수 있었고, 무브먼트가 보이는 백 케이스의 측면에는 링 모양의 다이얼을 추가해 속도 측정 스케일을 표시했다. 덕분에 이 회중시계로 시속 7km부터 180km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율리스 나르당과 미네르바를 비롯한 여러 매뉴팩처는 매우 일찍부터 브랜드 고유의 크로노그래프를 발명했다. 그 사이에 제니스는 발주/레이몬드(Valjoux/Reymond)가 제작한 무브먼트에 의존하다가, 1913년에 이르러서 브랜드 고유의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제니스는 이미 수요가 상당히 과열된 시기에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양면으로 측정 가능한 오메가 크로노스코프.

오메가나 론진은 스포츠 경기의 타임키핑에 참여하는 일이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재빨리 파악했다. 당시에는 레마니아, 르쿨트르, 발주/레이몬드 등의 무브먼트를 조합한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이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론진이나 오메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체 제작한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이며 스포츠 주최 측에 브랜드의 우월함을 강조했다. 많은 시계 브랜드가 외주로 제작한 무브먼트를 정교한 브리지 커팅 등으로 그 흔적을 숨겨왔던 사실을 고려한다면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매우 진보적인 선택이었다.

인하우스 크로노그래프 개발 

↑19리뉴 사이즈의 제니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제니스는 1911년 이래로 한창 성장하던 분야인 항공과 자동차,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는 물론 경쟁하던 매뉴팩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니스는 이 같은 과정에서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이고 믿을 수 있는 컬럼 휠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100% 자사 공장에서 제작할 방법을 모색했다. 

오메가가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제작을 외주에 맡기던 시기에도 제니스는 이미 인하우스 무브먼트 제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레핀(Lépine) 타입과 사보네트(Savonette) 타입의 무브먼트를 새롭게 선보일 수 있었다. 한편 라트라팡테 크로노그래프 응용 버전도 있었다. 제니스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브랜드가 되었고, 1915년에 크로노그래프 전문 브랜드인 르 파르(Le Phare)를 인수하면서 매뉴팩처 내에서도 무브먼트끼리 경쟁을 벌였다. 르 파르 덕분에 제니스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에 덧붙인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13년 오메가는 기존의 무브먼트보다 크기가 작아진 18리뉴짜리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제작했다. 손목시계에 장착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론진은 1936년에 항공 조종사들에게 매우 유용한 플라이백 기능에 L13 ZN 무브먼트를 장착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는 1920년대부터 모든 매뉴팩처의 카탈로그에 등장했지만,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손목시계보다는 회중시계인 경우가 더 많았다. 회중시계 무브먼트를 손목시계용 무브먼트로 적용하는 것도 고무적인 일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대형 시계에 속하는 직경 38mm짜리 손목시계들이 여전히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대중으로

↑군대에서 주로 이용한 한하르트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위대한 시계 발명품들이 등장한 시기다. 이 시기에는 전쟁으로 인해 군용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의 수요가 급속히 증가했다. 한하르트(Hanhart)는 물론 오메가, 론진 등 많은 브랜드가 군대에 시계를 납품했다. 비너스, 피어스, 발주 등 무브먼트 전문 제작사들은 여러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납품했고,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특성화한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더욱 중요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에 군대에서는 고도로 전문적인 시계를 시계 제작사에 요구했고, 그런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광범위하게 군인들에게 지급했다. 1950년대 중반에 프랑스군을 위해 개발된 타입 20 시계들이 더 많은 공군 장교와 하사관에게 보급되었다. 군대의 공식 공급업체로는 브레게, 도단(Dodane), 에랭(Airin), 오리코스트(Auricoste) 등이 있었다. 동시에 회중시계들도 여전히 보급되었는데, 특히 브레게의 24시간 항해용 시계가 대표적이었다. 이 시계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제거한 발주 5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탑재했지만 중앙 시침은 그대로 유지했다. 1960년대는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가 출시된 마지막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특정 브랜드가 귄위 있는 옛 모델을 한정 시리즈로 선보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회중시계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제니스가 크로노그래프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

소재가 금이거나 은, 니켈, 브라운 스틸이든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상당히 고가였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고객층이 그 대상이었다. 특정 브랜드들은 크로노그래프 기능에 문 페이즈, 캘린더, 미닛 리피터 같은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다. 크로노그래프 발명가들의 정신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두말할 것 없이 두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라트라팡테 기능이다. 

오늘날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는 수집가들에게 주요한 수집 대상이다. 수집가들이 보기에 크로노그래프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기능이기에 더 매력적이고, 또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혁신적으로 발전했기에 무브먼트를 개발한 이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증명해주는 시계다. 또 이 시계들은 놀라울 정도의 신뢰도를 자랑한다.

크로노그래프 회중시계는 이렇게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곧,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측정하고자 했던 시기, 그리고 순간을 고정하려 할수록 시간은 끝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던 그 시기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