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RITER OF TIME, CHRONOGRAPH : 4 퓨처리스트의 크로노그래프

스포츠 경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크로노그래프는 시계 애호가는 물론 스포츠 마니아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시계와 또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스타일과 기존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퓨처리즘 스타일의 크로노그래프가 미래의 디자인을 예고한다.


↑ 파네라이 루미노르 1950 레가타 오라클 팀 USA 3데이즈 크로노 플라이백 오토매틱 티타니오–47mm

파네라이가 제안한 레가타(Regatta) 기능의 ‘루미노르 1950 레가타 오라클 팀 USA 3데이즈 크로노 플라이백 오토매틱 티타니오–47mm’도 마찬가지다. 케이스는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형태 그대로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구상 자체는 클래식하지만 기능과 작동법은 현대적이며, 세계적인 요트 대회인 아메리카 컵(America's Cup)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요트 애호가들의 필요에도 부응하는 시계다. 오라클 팀 USA를 위해 제작한 이 새로운 시계는 놀랍도록 간편한 레가타 카운트다운 기능을 갖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탑재했다

↑ 율리스 나르당 마린 레가타



↑ 쇼파드 밀레 밀리아 크로노그래프

↑ 보메 메르시에 클립튼 클럽 코브라 크로노그래프



율리스 나르당은 ‘마린 레가타’를 통해 항해사와 조타수들에게 이상적인 시계를 제안했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경주에서 핵심적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을 담은 혁신적 무브먼트와 고전적 디자인 케이스를 결합했다. 쇼파드의 ‘밀레 밀리아 크로노그래프’의 경우는 옛날 시계가 아닌 빈티지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았다. 1927년에서 1940년 사이에 세계적인 클래식 자동차 경주 대회인 밀레 밀리아에 참가한 자동차의 아름다운 곡선과 대시보드에서 디자인을 착안했고, 여기에 COSC 인증을 받은 무브먼트를 장착했다. 빈티지풍이지만 자동차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에서 보메 메르시에의 ‘클립튼 클럽 코브라 크로노그래프’도 눈여겨볼 만하다. 쇼파드나 보메 메르시에의 시계 모두 빈티지 자동차를 연상시키는 디테일을 멋스럽게 살려 시계 애호가는 물론 자동차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계들은 레트로 퓨처라기보다 하이브리드 스타일에 더 적합하며, 이런 효율적인 전략은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제니스 데피 엘 프리메로 21


제니스는 ‘데피 엘 프리메로 21’로 현대성과 전통성이 조화를 이룬 신세대를 위한 기계식 시계를 선보였다. 1970년대 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둥그스름한 푸시 버튼을 장착한 케이스는 매우 클래식해서 그 안에 혁신적인 무브먼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데피 엘 프리메로 21에 장착된 새로운 오토매틱 무브먼트 엘 프리메로 9004는 오리지널 모델의 칼리버보다 더 적은 부품으로 얇은 두께 안에 보다 복잡한 매커니즘을 구현했다. 시간과 크로노그래프를 위한 별도의 이스케이프먼트를 지니는데, 크로노그래프는 36만VpH(50Hz)라는 엄청난 진동수를 자랑한다.

시계 애호가라면 어째서 이 위엄 있는 브랜드 제니스가 과거를 지우고 더욱 전위적인 시계를 만들지 않는지 아쉬워할 수도 있다. 그건 아마도 단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보이는 것은 해로울 수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분명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에 거쳐 쌓아온 각 브랜드의 비전과 전망 자체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일에는 반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 점을 인지한 지라드 페리고의 ‘크로노그래프 컴페티지오네 서큐토’는 클래식한 외관 및 현대적인 무브먼트의 조합과 정반대의 길을 시도했다. 즉, 클래식한 오토매틱 와인딩 메카닉 크로노그래프 칼리버를 장착했지만 케이스는 카본 티타늄 합성 신소재로 제작했고, 다이얼에는 퓨처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벌집무늬를 넣었다. 그 결과물은 매우 흥미롭지만 조금 더 전위적인 접근법을 택해도 좋았을 것 같다. 이를테면 무브먼트에 신소재를 활용할 수도 있고, 참신한 기능의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에버하르트의 크로노 4

↑ 포르쉐 디자인의 크로노그래프 모노블록 액추에이터



확연히 차별화되는 디자인의 시계는 미래의 디자인을 예고한다. 1887년 라쇼드퐁에서 창립해 1894년 혁신적인 시간 설정 시스템을 갖춘 포켓 워치로 특허를 받은 에버하르트(Eberhard & Co)의 접근 방식은 특별했다. 에버하르트는 올해 창립 130주년을 맞아 리미티드 에디션 ‘크로노 4’를 선보였다. 130점 한정 생산인 이 시계는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를 다이얼 사방에 배치하는 대신 나란히 일자형으로 배치하는 특별한 디스플레이 방식을 택했다. 이는 기술적으로도 놀랍지만 시각적으로도 단숨에 눈길을 끈다. 포르쉐 디자인이 택한 방식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80%가 시계를 택할 때 무브먼트보다 미적인 면을 보고 고른다. 디자인 측면에서 유행을 창조하는 데 빼어난 능력을 보유한 포르쉐는 푸시 버튼을 일체형으로 제작한 티타늄 케이스의 ‘크로노그래프 모노블록 액추에이터’를 선보였다. 기술적으로 완성도도 뛰어나고 스타일에서도 앞서 나간 이 시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퓨처리스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 위블로의 테크프레임 페라리 70주년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워치 브랜드는 바로 위블로다. 위블로도 올해 자동차 브랜드 페라리와 협업한 특별 에디션을 선보였다. 2011년부터 파트너십을 맺어온 페라리의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위블로는 페라리 디자인 센터가 자동차 디자인을 진행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시계를 디자인한 후 위블로 매뉴팩처에서 직접 제작했다. ‘테크프레임 페라리 70주년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는 위블로와 페라리의 파트너십에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시계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위블로와 페라리의 새로운 조우는 기술면에서 매우 혁신적이며, 3가지 미래지향적 소재인 킹 골드, 피크(PEEK) 카본, 티타늄의 3가지 버전으로 각각 70점씩 출시한다.


↑ 리차드 밀 RM 50-03 맥라렌 F1


퓨처리스트 디자인의 진정한 마스터는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아방가르드한 비전을 제시하며 시계 시장을 변화시킨 리차드 밀이라 할 수 있다. ‘RM 50-03 맥라렌 F1’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다. 게다가 그 가격도 기념비적이다. 1g당 가격으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무게는 겨우 40g 밖에 안 나가고, 전 세계에 75점밖에 존재하지 않는 이 모델을 차지하게 될 행복한 구매자에게 높은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리차드 밀은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의 안드레 가임(Andre Geim) 물리학 연구팀이 분리해내는 데 성공한 그라핀(Graphene) 소재를 시계 분야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안드레 가임은 이 기법을 발견해낸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와 함께 201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RM 50-03 맥라렌 F1은 그라프 TPT™ 소재로 제작했는데, 이 소재는 평행 필라멘트로 이루어진 600개 층으로 구성되었다. 각 섬유의 두께는 30㎛로 필라멘트에 그라핀으로 강화한 레진을 주입한 후, CNC라는 기계로 평행 필라멘트의 각도를 층마다 45°씩 회전해 압축한다.


시계 브랜드 중에서 리차드 밀만이 쓰는 이 특별한 소재를 보면 워치메이커는 언제든지 더 먼 곳까지 나아갈 수 있으며, 완벽한 전통이라도 미래지향적 비전과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깊이 있는 사고와 열정만 담고 있다면 말이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레뷰 데 몽트르> 8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